•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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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군(魯山君)

육신(六臣)들의 기도(企圖)가 실패하자, 상왕도 역시 이 일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寧越) 【강원도】 로 나가 살게 되었다. 이에 앞서 상왕은 창덕궁에서 이사하여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의 집에 있었으므로, 유도 역시 역모에 연루되어 순흥(順興) 【경상북도】 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유는 항상 순흥부사(順興府使) 이보흠(李甫欽)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로 마주하며 비분강개하였으며, 마침내 함께 노산군의 복위를 도모하여, 이보흠으로 하여금 격문(檄文)의 초안을 쓰도록 하였다. 어떤 사람이 몰래 그 격문을 훔쳐가, 마침내 사건이 드러났다. 이보흠은 붙잡혀 주살되었고 유(瑜)도 역시 사약을 받고 죽었다. 노산군은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때가 세조 2년 10월 24일이다. 【『세조실록(世祖實錄)』·『조야첨재(朝野僉載)』】 후에 숙종 때에 이르러 노산군을 복위시키자는 건의가 있어, 숙종 24년 11월에 마침내 노산군을 추복(追復)하여 묘호(廟號)를 단종(端宗)이라고 불렀다. 야사(野史)에 따르면, “노산군은 사약을 받았는데, 끝내는 시중을 드는 신하에게 목이 졸려 죽었다.”라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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