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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군(郡)의 폐지와 재설치

세종 때, 압록강 상류 지방에 여연(閭延), 자성(慈城), 무창(茂昌), 우예(虞芮) 등 4군을 설치하였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서술하였다. 【제2과 비고 「여진과의 관계」 참조.】 그러나 건너편 만주의 여진족이 발호하여, 여러 차례 이 지방에 침입하여 큰 피해를 입혔지만, 너무 궁벽한 곳에 치우쳐 있어 그들을 쉽게 방어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세조는 즉위한 해에 여연, 무창, 우예 3군을 철폐하고, 그 백성들을 구성(龜城)과 강계(江界) 【모두 평안북도】 로 이주시켰고, 세조 4년에 자성군을 폐지하여 그 백성들을 강계로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그곳을 폐사군(廢四郡)의 땅이라고 불렀다. 이후 2백 수십 년이 지나 숙종(肅宗) 【제19대】 9년에, 다시 이 땅에 무창, 자성의 두 진(鎭)을 설치하도록 명령하였지만 곧 폐지하였다. 후에 백여 년이 지나 정조(正祖) 【제22대】 12년에, 다시 무창진을 설치하였고, 순조(純祖) 【제23대】 13년에 부(府)로 승급시켰으며, 소재지를 후주(厚州)로 옮겨 함경도에 속하게 하였지만, 또다시 폐지하였다. 이 태왕(李太王) 6년 【메이지(明治) 2년】 에 상신(相臣) 김병학(金炳學)의 건의에 따라, 후주와 무창을 합쳐 새로 후창군(厚昌郡)으로 정하였으며, 다시 평안도에 소속시켰고, 같은 해에 다시 자성군(慈城郡)을 설치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같은 지방이 확실하게 군치(郡治)에 들어선 것은 매우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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