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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四學)

정종(定宗) 2년에 처음으로 경성 안에 동·서·중·남·북의 5부(部)에 각각 학교를 설립하고 오부학당(五部學堂)이라고 불렀다. 세종(世宗) 27년경에 북부학당을 폐지하고 동·서·중·남의 넷만을 유지하였다. 이 때문에 사부학당(四部學堂)이라고 불렀으며, 보통 사학(四學)이라고 불렀다. 사학에는 명륜당과 재(齋)를 설치하였지만 문묘는 설치하지 않았다. 이것이 향교와 다른 점이다. 역대 여러 왕들은 여러 차례 학전(學田)과 노비를 지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연안의 여러 섬들의 어장을 주어, 그 세금으로 선비를 양성하는 자금을 충당하도록 하였다. 사학은 각 학교마다 교수(敎授) 2명 및 훈도(訓導) 2명을 배치하였는데, 모두 성균관의 직원들이 겸직하였다. 사학 유생의 정원은 각 학교마다 백 명으로 한정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중기 이후에 사학의 역할이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인조(仁祖) 【제16대】 가 정묘 후란(丁卯後亂) 후 【제7과 「병자(丙子)의 난」 참조】 에 사학의 유생 정원을 5명 이하로 줄인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어서 현종(顯宗) 【제18대】 때 북학(北學)을 다시 설치하기도 하였지만, 일시적인 데 불과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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