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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僧軍)이 일어나다

임진난(壬辰亂)을 맞이하여 승려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 평안남도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의 승려】 은 승군(僧軍)을 모집하였으며, 또한 제자들에게 격문을 돌려 유정(惟政), 【송운대사(松雲大師)】 처영(處英) 【뇌묵대사(雷黙大師)】 등을 각각 한 방면의 장수로 삼아 공훈을 세웠으므로, 선조(宣祖) 【제14대】 는 휴정을 팔도십육종(八道十六宗) 【조선은 8도인데다 선종과 교종의 두 종파가 있었으므로 이렇게 불렀다.】 의 도총섭(都摠攝)에 임명하여 승려를 통솔하도록 하였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불교는 유교에 압도되었지만 전혀 쓸모없이 여겨지던 승려들도 국난의 시기에 이르러 크게 쓸 데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조(仁祖) 【제16대】 는 승려가 함부로 풍수를 말하여 인심을 현혹시키고 혹은 권세 있는 집안에 드나들며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것을 걱정하여, 승려와 비구니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에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쌓을 때에 승려들을 모집하여 노역을 돕게 하였으며, 또한 성 안에 사원을 짓고 그곳을 승려들의 진영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들을 모집하여 성을 지키는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 후에 북한산성(北漢山城)에도 똑같이 승려들의 진영을 설치하였으며, 【 숙종 때】 또 성을 쌓는 등의 경우에 승병들을 동원하여 노역에 종사하게 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리하여 승려는 완전히 그 본래의 사명을 잃었고, 불교는 점차 타락할 뿐이었다. 현종(顯宗) 【제18대】 때 양민이 삭발하고 승려나 비구니가 되는 것을 금지시키는 명을 내린 것을 보아도 얼마나 승려가 천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상은 조선 시대에 불교의 변천을 개략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시대는 이전 시대의 불교의 폐해에 염증을 느껴 숭유배불(崇儒排佛)을 정교(政敎)의 커다란 방침으로 삼았고 그 결과 승려의 지위는 저하되어 승려는 보통 사회에서 일반 백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게 되었고, 불교는 겨우 종교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불과하였다. 일한병합(日韓倂合) 후에 조선의 불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포교(布敎)가 허용되었고, 승려의 신분도 일반 인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되어 면모가 완전히 새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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