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5. 사화(士禍) 및 붕당(朋黨)
  • 강의요령[說話要領]
  • 사화(士禍)

사화(士禍)

태조(太祖)부터 성종(成宗)에 이르기까지 130년간 역대 왕들은 모두 뜻을 정치에 기울였지만, 연산군(燕山君) 【제10대】 에 이르러 음란한 행실이 도가 지나쳐 추호도 국정(國政)을 돌보지 않았으므로 기강이 크게 느슨해졌다. 이렇게 되자 여러 신하들 가운데에는 서로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편에서 몰래 일을 꾸며 다른 한편을 죄에 빠뜨려 그들을 죽이거나 유배 보내기도 하였다. 또 연산군의 생모(生母)인 윤씨(尹氏)는 성종의 비(妃)였지만 폐위되어 사약을 받았다. 연산군은 이를 크게 슬퍼하여, 즉위한 후에 그것을 보복하려고 일찍이 성종 때 폐비(廢妃)의 사건에 관여한 사람 수십 명을 죽이고, 이미 죽은 사람은 그 관을 열어 시신을 참수하는 등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이리하여 수많은 명사(名士)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일을 일컬어 사화(士禍)라고 부른다. 이러한 일이 여러 차례 행해진 데다 연산군은 행동이 지나치게 무도하였으므로 마침내 폐위되었다. 이 때문에 이후부터 그를 왕으로 대우하지 않고, 시호도 올리지 않았으며, 단지 연산군이라고만 불렀다. 연산군 다음에는 그의 동생인 중종(中宗) 【제11대】 이 왕위에 올라 전대(前代)의 폐정을 크게 개혁하였지만, 여러 신하들의 서로 다투는 풍조는 그치지 않았다. 중종 때와 그 이후에도 이른바 사화라는 것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그로 인해 명신(名臣)과 학자(學者)들 중 비명에 스러져간 사람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참으로 불행의 연속으로 국운의 발전이 가로막힌 것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조광조(趙光祖)도 중종 때 사화를 당해 죽었다. 이 무렵부터 왕권은 크게 쇠약해졌고 이러한 사정은 만연하여 붕당(朋黨)의 폐해를 낳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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