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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가 필리핀과 대만(臺灣)에 입공(入貢)을 촉구하다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일을 일으키려고 하면서, 또한 필리핀 군도 【당시 우리나라[일본]에서는 여송(呂宋)이라고 불렀다.】 를 불러들여 우리에게 복종하도록 하였다. 필리핀 군도는 우리가 전국(戰國) 무렵 【기원 2189년, 고나라(後奈良) 천황 2년】 에, 스페인 사람이 태평양을 항해하다 이른 곳이며, 에이로쿠(永祿) 8년(기원 2225년)에 식민지로 삼았다. 겐키(元龜) 2년 【기원 2231년】 에 비로소 마닐라에 정청(政廳)을 세우고, 오오모리(大守)를 두어 그곳을 통치하게 하였지만, 토착민들의 반항이 그치지 않았고 그 방비도 역시 견고하지 못하였다. 하라다 마고시치로(原田孫七朗)라는 사람이 여러 차례 그곳을 왕래하여 그곳 사정에 밝았으므로, 텐쇼 19년 【기원 2251년】 9월에 히데요시는 마고시치로를 통해 오오모리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의 입공(入貢)을 촉진하고, 만약 지연되면 이어서 군대를 보내겠다는 사실을 전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릇 우리나라는 백여 년간 작은 나라들이 패권을 다투느라 천하가 통일되지 못하였지만, 내가 태어날 즈음에 천하가 통일될 기이한 조짐이 있었다. 그리하여 장년이 된 나는 나라를 다스린 지 10년도 안되어 아주 작은 지역까지도 남김없이 모두 통일하였다. 그러자 삼한(三韓)·유구(琉球)부터 먼 나라 이역에서조차 우리나라 변방에 와서 조공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명나라를 정복하려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그 나라 사람들은 아직까지 조공의 예를 갖추지 않으므로 먼저 군졸을 이끌고 토벌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상선(商船)편으로 그 나라를 수시로 왕래하는 하라다 마고시치로라는 자가 근신(近臣)을 통해 자신을 소개하며 말하기를, “아무개가 서둘러 그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가 배를 띄우는 취지를 미리 설명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조공 바치는 것에 대해 해명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군막(軍幕)을 나서지 않고도 천리 밖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옛 사람의 지극한 말이다. 따라서 천한 사람의 말을 듣고, 잠시 장수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내년 봄까지 큐슈와 히젠에 진영을 설치하고 옮기지 않을 것이니, 날짜에 맞춰 항복 깃발을 들고 와서 항복하라. 만약 무릎걸음하며 엎어지며 자빠지느라 지연할 경우라도 기필코 신속히 정벌할 것이다. 후회하지 말라. 이만 줄인다.

 텐쇼 19년 9월 19일

오오모리(大守)는 히데요시의 편지를 보고 크게 놀라, 사신을 보내 히데요시를 히젠(肥前)의 나고야(名古屋)에서 알현하고, 그 진의(眞意)를 살폈다. 그러나 당시 히데요시는 조선을 정벌하는 데 힘을 썼으므로, 마닐라에 전념할 수 없어 서신을 주고받는 데 세월을 보냈으며,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나자 일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히데요시는 또한 분로쿠 2년 【기원 2253년】 11월에 하라다 마고시치로로 하여금 대만(臺灣)에 편지를 보내서, 그들이 입공(入貢)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릇 태양은 두루 비추어 주어 바다와 산과 내와 풀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까지 태양의 은광을 입지 않음이 없다. 내가 인자하신 어머니의 태반에 잉태되려 할 때 어머니께서 상서로운 꿈을 꾸었는데, 그날 밤 햇빛이 온 방안에 가득하여 마치 대낮과 같아지자, 사람들은 놀라 두려움에 떨었다. 점쟁이들이 모여 점을 치고 말하기를, “장년이 되면 덕이 온 세상에 빛나 만방에 위광을 발할 기이한 일이로다.” 하였다. 나는 출세한 지 10년이 채 안되어 불의를 다스리고 공을 세웠으며 국내를 평정하였다. 그러자 다른 나라의 아주 외진 곳에서조차 나의 풍모를 흠모하여 홀연 자기 나라를 떠나 먼 바다에 배를 띄워-오고가는 사신들이 끊이지 않아 길에는 수레가 뒤엉키는데도-앞을 다투어 항복하였다. 그런데 조선국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동맹의 맹세를 하였음에도 오래 전에 그 약속을 배신한데다 또 내가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할 때 배반할 계략을 꾸몄다. 이 때문에 장수들에게 명하여 조선을 정벌하자, 국왕은 도망치고 수도 한양은 불바다가 되었다. 사태가 급박해짐을 들은 명나라가 수십만 명의 구원군을 보내 전투를 하였지만 끝내 전세가 유리해지지 못하자, 명나라는 칙사를 우리나라 히젠에 보내 항복을 구걸하였다. 조선에 수십 개의 성에 진영을 쌓고 조선의 영내에 있는 경상도에서 병사를 거두어 여러 번이나 진위를 확정하였다. 남만(南蠻)의 유구(琉球) 같은 경우에는 해마다 지역 특산물을 바다와 육지를 통해 배와 수레로 보내와 나의 덕광을 숭앙하였다. 그런데 너희 나라는 아직까지 막부에 들어오지도 조공을 하지도 않았으니, 죄가 하늘에 가득하다. 비록 그렇더라도, 사방에서 조공 바치는 것을 몰랐다면, 그 지역이 외지다는 이유로 너희 나라의 뜻까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하라다씨에게 사명을 받들어 배를 띄우게 하였으니, 만약 이렇게 하였는데도 와서 조공하지 않는다면 장수들에게 너희 나라의 정벌을 명할 것이다. 만물을 생장시키는 것도 태양이고, 만물을 말려 죽이는 것도 태양임을 생각하라. 이만 줄인다.

 분킨(文禁) 2년 호시아츠(星集) 계사(癸巳)년 11월 5일

 일본국 전 관백(關白) 인(印)

 다카이야마국(高山國)

다카이야마국이란 곧 다카사고 【고사(高砂)】로서, 우리나라[일본] 사람들이 대만(臺灣) 섬을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 대만은 토번(土蕃)의 소굴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히데요시의 편지에 대해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히데요시는 이어서 세상을 떠나고 후대 사람이 그의 웅대한 시도를 계승할 수 없게 되자, 대만은 잠시 네덜란드인에게 점령되었으며, 후에 정성공(鄭成功)이 차지하였으며, 그가 죽자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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