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8. 영조(英祖) 및 정조(正祖)
  • 강의요령[說話要領]
  • 두 왕의 치적(治積)

두 왕의 치적(治積)

임진란과 병자란을 거쳐 조선의 국력은 크게 피폐해졌는데, 그 후 70여 년이 지나 영조(英祖) 【제21대】 와 정조(正祖) 【제22대】 의 두 임금이 나타나 잇따라 정치에 힘썼으므로, 이때 일시적으로 부흥의 시기를 맞았다. 영조는 경종(景宗) 【제20대】 의 아들이고, 정조는 영조의 손자이다. 두 임금이 모두 총명하고 학식이 뛰어났던 점은, 역대 여러 왕들 가운데에서 보기 드문 경우였다. 그들의 치적들 가운데 중요한 사항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함으로써 백성들을 이끌었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풍속을 바르게 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였다. 예종(睿宗) 【제8대】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완성한 이래, 제도가 변혁된 부분이 적지 않았으므로, 『대전』의 정리(整理)와 정정(訂正)을 실행하였으며, 또한 갖가지 서적들을 간행하여 문학(文學)을 장려하였다. 두 왕의 치세(治世)는 이와 같이 문화 부흥의 기운으로 나아갔지만, 선조(宣祖) 【제14대】 때 처음으로 붕당(朋黨)의 다툼이 생겨나서부터 해를 거듭함에 따라 그 풍조가 점점 더 심해졌다. 영조는 당쟁의 해로움을 깊이 알았으므로 즉위 초기부터 그것을 중단시키는 데에 마음을 쏟았지만, 그의 치세 동안에는 붕당의 다툼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는 상태였다. 이어서 정조도 역시 그 뜻을 이어받아 크게 힘을 기울인 결과, 이 무렵부터 당쟁은 어느 정도 격렬함이 감소하기는 하였지만, 도저히 근절시킬 수 없었다. 그 밖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각종 폐해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민력(民力)은 점차 피폐해져 갔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