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모가 주살된 후 33년이 지나 청나라의 유방제(劉方濟)가 조선에 들어와 포교에 종사하였다. 【순조 33년, 서기 1833년】 무릇 ‘신유의 옥’ 이후 국가가 여전히 금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점점 더 나라 안에 만연하여, 위로는 정부의 고관에서부터 아래로는 부인과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교도(敎徒)가 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유진길(劉進吉), 【고등 역관(譯官】 정하상(丁夏祥), 【정약종의 아들】 조신철(趙信喆) 【평민】 등 교도의 주요한 인물들이 상의하여 몰래 중국에서 유방제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 신부(劉神父)는 거주한 지 4년 만에 귀국하고 【헌종 2년, 서기 1836년】 그를 전후하여 유럽인 선교사들이 새로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