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은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었으며, 또한 종래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굳건하게 개혁을 실행하였다. 대원군이 정치에 참여하여 크게 출척(黜陟)을 단행하였는데, 우선 전대(前代)부터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외척인 김씨 일족을 파면하고, 조금도 당파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 인재를 등용하였다. 또 당시의 서원(書院)은 유림(儒林)들이 함부로 정치를 비방하는 장소에 불과하였으므로, 명을 내려 그 대부분을 철폐하게 하는 등 종래의 잘못된 풍습들을 과감하게 타파하는 데 힘썼다. 이에 더해 풍속을 개량하여 사치와 문약(文弱)의 폐해를 바로잡고, 제도를 개혁하여 행정의 쇄신을 꾀하였으며, 동시에 군비(軍備)를 가다듬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국정에서 가장 긴요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궁궐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하여 위엄을 보이려고 당시 폐허가 되어 있던 경복궁(景福宮)의 재건을 시도하였으며,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자 특별히 인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관작(官爵)을 수여하고 금전을 바치게 하였다. 또한 명을 내려 큰 돌과 좋은 목재를 수집하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의 고통은 심각하였지만 조금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크게 인심을 잃었다. 또 대원군은 청나라 이외의 여러 외국에 대해서는 굳게 쇄국양이(鎖國攘夷) 정책을 취하여, 이들과 평화적 교류를 하는 것을 피하였으므로 스스로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국운(國運)의 진보를 저해한 바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다시 아래에서 설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