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9. 대원군(大院君)의 집정
  • 비고(備考)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 부기(附記)

부기(附記)

최익현(崔益鉉)

최익현(崔益鉉)은 충청남도 정산군(定山郡) 사람으로, 호를 면암(勉庵)이며, 유생들 사이에서 성망(聲望)이 있는 유학자였다. 벼슬이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에 이르렀는데, 이 태왕 4년에 상소를 올려 시국을 논하였으므로 부승지(副承旨)에 제수되며, 이어서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진급하였다. 10년에 다시 글을 올려 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하여,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12년에 풀려날 수 있었다. 13년 【메이지 9년, 병자년】 에 비로소 일한수교조약(日韓修好條約)이 체결되자 그것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며 16년에 사면되었다. 광무(光武) 9년 【메이지 38년】 에 일한신협약(日韓新協約) 【이른바 보호조약(保護條約】 의 체결에 크게 반대론을 제창하였으며, 경성에 유약소(儒約所)를 설치하고, 통문(通文)을 13도에 보내 활발하게 유생들을 선동하였다. 이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광무 10년 【메이지 39년】 5월에 무리들을 모아 전라북도 태인군(泰仁郡)에서 난을 일으켜 정읍(井邑), 순창(淳昌), 곡성(谷城) 등 여러 군들을 휩쓸었다. 이때 파견된 관병(官兵)들은 그들을 순창에서 격파하였다. 최익현은 부하 11명과 함께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되었고, 쓰시마(對馬)도에 감금되었는데 이어서 병을 얻어 광무 11년 【메이지 40년】 1월 1일에 귀양지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고향 마을로 돌아와 장례가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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