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9. 대원군(大院君)의 집정
  • 비고(備考)
  • 인재의 등용

인재의 등용

철종(哲宗) 때는 왕비의 아버지 김문근(金汶根)이 외척으로서 모든 중요 정무를 결재하였으며, 그 일족은 대부분 높고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마침내 김문근은 영의정이 되었지만 철종이 세상을 떠나고 이 태왕(李太王)이 즉위하자, 대원군은 모든 김씨 일족을 물리치고 조대비(趙大妃)의 일족인 조두순(趙斗淳)을 영의정으로 삼았으며, 그 외에 자기의 복심(腹心)들을 중요한 지위에 앉혀 정치를 좌우하였다. 당시는 사색(四色) 가운데 특히 노론(老論)이 매우 강성하였던 때로 남인(南人)이나 북인(北人) 사람들은 거의 등용되는 자가 없었다. 대원군은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 추호도 당파에 구애되지 않았고, 처사(處士)들을 불러 그들의 의견을 들었으며, 또한 한 가지 기예나 한 가지 능력이 있는 사람은 비록 미천한 신분이라 할지라도 각자 그의 신분에 맞게 부렸다. 서북인(西北人) 및 개성인(開城人)은 종래에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이 태왕 3년에 이를 허락하기로 하였다. 또한 고려 왕씨(王氏)의 후예는 헌종(憲宗) 무렵부터 경관(京官)에 선발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이 태왕 4년에 왕정양(王庭楊)이라는 사람이 과거에 급제하였으므로 비로소 그를 채용하였다. 종래 조선에서는 왕족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또한 관직에 임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대원군은 정치를 장악하게 되자 이 태왕 6년에 이 제도를 철폐하고, 왕족의 일부 사람들에게 과거에 응시하고 관직에 임용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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