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9. 대원군(大院君)의 집정
  • 비고(備考)
  • 척화비(斥和碑)

척화비(斥和碑)

전 항(項)에서 기재한 바와 같이, 대원군은 이 태왕 8년 【메이지 4년 신미년, 서기1871년】 4월에 미국 군함의 습격을 격퇴함에 따라 사기가 급격히 앙양되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도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고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우리의 만대 자손들에게 경계하노라.(戒吾萬年子孫) 병인년에 만들어 신미년에 세우노라.(丙寅作 辛未立)

라는 문구를 돌에 새겨 8도의 주요 교차로에 세우게 하였으며, 또한 묵공(墨工)에게 명하여 묵면(墨面)에 앞에 기록된 12자와 함께 “위정척사(衛正斥邪)”라는 문구를 나타내도록 함으로써, 온 힘을 다해 배외사상을 고무시켰다. 그러나 메이지(明治) 15년 【임오년】 7월에 정변(政變)이 일어나 대원군은 청나라로 들어갔으며, 조선 정부는 일본 정부와 제물포조약(濟物浦條約)을 체결하고, 이어서 전 세계적 대세(大勢)에 쫓겨 여러 외국들과 교류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 척화비는 철거되었다. 【임오년 8월】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