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9. 대원군(大院君)의 집정
  • 비고(備考)
  • 일본과의 관계
  • 부기(附記)

부기(附記)

왜관(倭館)의 위치

왜관(倭館)은 처음에 현재의 부산진(釜山鎭) 성터의 기슭인 노하동(路下洞)에 있었으며, 중종(中宗) 5년에 삼포(三浦)의 난으로 한때 철폐되었지만, 7년에 다시 세웠다. 부로쿠(文祿) 전쟁 【임진란(壬辰亂)】 후에 교류가 한때 중단되었지만, 게이죠(慶長) 11년에 화친을 회복하여, 14년 【광해군 원년 기유년, 서기 1609년】 에 다시 건립하였다. 그 위치는 부산부(釜山府)의 북쪽 1리(里) 정도 되는 곳에 해당하며, 지금도 여전히 옛 관(館)의 이름이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 엔보(延寶) 6년 【숙종 4년 무오년, 서기 1678년】 에 땅이 좁아 정박에 불편하였으므로, 쓰시마 번사(藩士)인 츠노에 효고노스게(津江兵庫助)가 온갖 노력을 함으로써, 초량항(草梁項)으로 옮겼다. 즉 지금의 부산부 시가지 안에 있는 용두산(龍頭山)을 중심으로 하는 왜관 터로서, 메이지 10년 1월까지 일본공사관으로 존재하였다. 이곳도 초량항이라고 일컬어졌으며, 또는 초량관(草梁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