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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

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

러시아는 1868년에 트루키스탄의 남쪽 변방을 침범하여, 아프가니스탄과 경계를 접하게 되었으므로, 음으로 양으로 그 내정에 간섭함으로써, 훗날 영국령 인도로 나아가는 전략적 근거지[策源地]로 삼으려 하였다. 영국은 결코 그것을 묵과할 수 없어 여러 차례 러시아와 아프가니스탄 두 나라에 항의하였는데, 1885년 【메이지 18년, 이 태왕 22년】 4월에 영국과 러시아의 국교가 위기에 처하자, 영국의 동양함대(東洋艦隊)는 갑자기 본국 정부의 명령에 따라 조선의 거문도(巨文島)를 점령하였다. 【같은 달 14일】 이 섬은 전라도에 속하며, 제주도의 동북쪽에 해당하는데,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둘러싸고 있어 하나의 좋은 항구를 이루었다. 영국의 동양함대가 이렇게 형세가 좋은 땅을 점령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러시아의 세력을 쓰시마(對馬) 해협에서 저지하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영국 함대의 사령장관(司令長官)인 해밀톤은 즉 아가멤논 이하 4척과 운송선(運送船) 2척을 이끌고 4월 15일에 이 섬에 와서 산 위에 신호소(信號所)를 설치하고, 바다의 항구에는 수뢰(水雷)를 부설하였으며, 또한 멀리 중국 상해(上海)에서 해저 전선(電線)을 설치하여 본국과의 통신을 편리하게 하였다. 영국은 이처럼 이 섬에 영구적인 설비를 갖춤과 동시에, 항구 이름을 해밀톤이라고 불렀다. 러시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조선에 항의하여 영국 함대가 이 섬에서 철수하도록 압박하게 하였으며, 또 청나라에 대해 영국의 이 섬 점령을 승인한 것은 불법이라고 비난하였으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도 반도의 일부를 점령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조선은 직접 열강과 절충할 실력이 없었으므로 사건의 교섭을 청나라에 위임하였다. 때문에 청나라는 영국과 담판하였는데, 때마침 영국 동양함대 사령장관으로부터 거문도의 점령은 득실이 서로 비슷하다는 보고가 도달하였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문제도 이미 위기를 벗어났으므로, 영국은 러시아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조선의 일부를 점령하는 일이 없다면, 거문도를 포기하겠다고 청나라를 통해 알렸다.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그에 대한 보증을 받고, 1887년 【메이지 20년, 이 태왕 24년】 2월 27일에 이 섬에서 철수하였다. 이것을 거문도사건(巨文島事件)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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