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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褓負商)들과의 충돌

그러나 메이지 31년 【광무 2년】 11월 하순에 보부상 수천 명이 예전에 폐지된 상리국(商理局) 【부상(負商)을 지배하던 관청】 의 부활을 청원한다는 명분으로 속속 도성에 모여들었다. 황국협회 회원은 만민공동회 회원들과 21일에는 인화문(仁化門) 【지금의 덕수궁 서쪽에 있는 문】 앞과 서대문 밖에서, 이튿날인 22일에는 남대문 밖에서 투쟁하였는데 쌍방 모두 많은 부상자들이 나왔고 파손된 가옥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도피하는 등 성 안이 온통 소란한 거리로 바뀌었다. 이즈음, 21일 밤에 내각이 경질되었지만 새 정부는 시국을 수습하고 진압할 힘이 없어, 우선 민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부상단(負商團)을 억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황제의 밀지(密旨)에 따라 집합한다고 자칭하면서, 그 격앙은 점차 심해졌으며, 다시 한 번 큰 충돌을 보게 될 형세로 다가갔다. 이리하여 황제는 친히 나가서 양쪽의 싸움을 조정하기로 결정하고, 26일에 돈례문(敦禮門) 밖 【경운궁 서남쪽】 에 임시 건물을 짓게 하였으며 백관을 거느리고 거기에 나아가, 쌍방의 대표자들을 불러 따로 간곡히 타일러 점차 그들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후 형세는 민회의 발달에 유리하지 않았으므로 민회는 점차 괴멸되게 되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허버트, 『조선사(朝鮮史)』·『한반도(韓半島)』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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