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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27〜28년 전쟁 후의 청나라 사정

메이지 27〜28년 전쟁이 종결 국면을 맞이하자 청나라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세 나라의 주선으로 요동반도를 보유할 수 있었지만, 이들 세 나라는 그 후 각각 청나라에 요구하는 것이 있었다. 프랑스는 이에 앞서, 청나라와 싸워 안남(安南)을 취하여 자신들의 보호국으로 삼았고, 28년 6월에 안남의 북쪽 국경을 변경하여, 안남 철도를 청나라 국경 안으로 연장하고, 광서(廣西)와 광동(廣東) 지방에서 광산 채굴 예약권(豫約權)을 획득하였으며 그 세력을 청나라에 심었다.

러시아도 미리 본국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연락을 위해 시베리아 철도의 부설을 계획하였는데, 29년 9월에 청나라와 교섭하여 만주를 통과하여 철도를 부설할 것을 승낙하도록 하였다. 이른바 동청철도(東淸鐵道)가 그것이다. 30년 1월에 독일의 선교사 두 사람이 산동성(山東省) 곤주부(袞州府)에서 청나라 폭도들에게 살해되자, 독일 정부는 함대를 파견하여 교주만(膠州灣)을 점령하게 하자, 러시아 함대도 역시 겨울철을 보내야 한다는 핑계로 배들이 줄을 이어 여순(旅順)으로 들어왔다. 이리하여 독일은 31년 3월까지 청나라 정부로부터 폭도들의 흉악한 행위에 대한 보상금을 받고, 다시 산동성에서 철도 부설 및 광산 채굴의 권리와, 99년간 교주만을 조차(租借)할 권리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는 25년간 여순과 대련(大連) 일대의 땅을 조차하고 동청철도의 지선(支線)을 부설하여 만주를 종단(縱斷)하며, 그 연도(沿道)에 있는 광산의 채굴권을 획득하였다. 이어서 프랑스도 역시 광주만(廣州灣)을 99년간 조차할 권리를 얻었다. 이처럼 유럽의 세 강국들은 각자 극동에 유력한 근거지를 차지하는 큰 특권을 획득하였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일본]도 청나라에 대해 대만(臺灣)의 건너편 연안인 복건성(福建省)의 땅을 다른 나라에 할양하거나 조차하지 말 것을 약속하게 하여, 대만해협의 군사적 가치를 유지하였으며, 영국은 우리 주둔군이 철수한 뒤를 이어 위해위(威海衛)를 조차함으로써 러시아와 대치하는 그 이권을 옹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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