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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13. 통감부(統監府)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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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한 동맹(日韓同盟)

일한 동맹(日韓同盟)

이에 앞서 한국에서는 여러 당파(黨派)들이 분립하였는데 여러 외국 세력들도 이에 가담하여 정국은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다. 바야흐로 일본과 러시아의 위기가 닥쳐오자 구미(歐美) 제국(諸國)의 군대는 공사관 및 거류민의 보호를 명분으로 속속 경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한국 정부는 그들의 거취에 곤혹스러워하다가 1월 23일에 갑자기 국외중립(局外中立)을 성명(聲明)하였다. 한국 정부의 이 성명은 일본과 러시아 양국이 아직 선전포고를 하기 전이었으므로, 국제공법(國際公法)에서 이른바 국외중립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 없이 명백한 것이었다. 2월 9일에 우리 주한(駐韓)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한국 외부대신(外部大臣) 임시 서리(署理) 이지용(李址鎔)에게 통첩하여, 제국 정부는 먼저 러시아에게 침해를 받은 한국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선발대 2천 명을 상륙시키겠다는 것을 알렸다. 또한 한국 황제를 배알하고 우리나라[일본]가 한국에 출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러시아 군대가 경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경성 부근을 전장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어서 우리 군대가 한국을 통과할지 헤아릴 수 없지만 일본 군대는 결코 폐하의 존엄을 해치거나 국민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 등을 아뢰고, 황제의 승낙을 얻었다. 이어서 2월 23일에 일한의정서(日韓議定書)를 체결하기에 이르러, 두 나라는 가까워져서 완전히 동맹의 모습이 되었다. 【다음 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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