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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주군총사령부의 성립과 요양(遼陽)의 전투

만주군총사령부의 성립과 요양(遼陽)의 전투

바다와 육지의 전쟁 국면은 점차 우리나라의 승리로 전개되자, 5월 5일에 제2군 사령관 육군 대장 오쿠 야스가타(奧保鞏)는 제3함대의 엄호 하에 요동 반도에 상륙하여, 금주(金州) 및 남산(南山)을 공략하고, 나아가 청니와(靑泥窪) 【대련】 를 점령하였으므로, 여순은 완전히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다. 그리하여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는 제3군의 지휘자로서 여순구 포위의 임무를 맡았고, 역시 육군대장인 노즈 미치츠라(野津道貫)는 제4군을 이끌고 제1군과 제2군에 연락을 취하면서 북진하였다. 6월 15일에 제2군은 득리사(得利寺)에서 적의 대역습을 물리치고, 또한 제1기 작전계획의 주요 목표인 요양(遼陽) 공격 시기도 다가왔으므로, 만주군총사령부(滿洲軍總司令部)를 두고, 원수 육군대장 오야마 이와오(大山巖)는 총사령관에, 육군대장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郞)는 총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적의 총수(總帥)인 크로파트킨은 요양에 주력을 집중하여 우리 군대를 저지하려고 하여, 전체 길이 10여 리(里)에 방어선을 쳤다. 우리 군대는 제1군을 우측 날개로, 제2군을 좌측 날개로, 제4군을 중앙에서 진격하게 하여, 먼저 고전(苦戰)하여 요새인 수산보(首山堡)를 탈취하고, 공격을 계속한 지 10여 일 만인 9월 4일에 완전히 요양을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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