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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양위(讓位)

헤이그 밀사 사건이 있은 다음 달, 즉 7월 19일에 한국 황제는 양위(讓位)의 조서를 발표하고, 황태자 척(坧)으로 하여금 국정(國政)을 대신하게 하였다. 그 조칙(詔勅)에서 말하기를,

아아! 짐(朕)이 여러 선조 임금들의 크나큰 위업을 계승하고 지켜온 지 오늘로 44년이 되었다. 여러 차례 큰 난리를 겪으면서 정치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인재 등용에서 간혹 그 사람이 잘못되어 소란이 나날이 심해지고, 그 조치가 대부분 시의(時宜)에 괴리되어 근심과 걱정이 바야흐로 급해졌으며, 백성들의 곤궁과 나라의 위태로움이 아직까지 이보다 심한 적이 없었다. 【중략】 짐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황위를 물려주는 것은 원래 역대로 시행해 오는 규례였고, 또한 우리 선대 임금들의 훌륭한 예의를 옳게 계승해야 할 것이다. 짐은 지금 군국(軍國)의 대사(大事)를 황태자에게 대리(代理)하노니, 의식 절차는 궁내부(宮內府)와 장례원(掌禮院)이 마련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나라의 운명이 얼마나 곤란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때문에 다음날인 20일에 곧바로 중화전(中和殿) 【덕수궁 안의 서쪽에 있다.】 에서 양위식을 거행하였다. 새 황제는 22일에 전 황제에게 태황제(太皇帝)라는 존칭을 바치고, 황태자 대리(代理)의 칭호를 높여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태황제는 재위 44년, 나이 56세에 퇴위하고 그 후 오랫동안 경운궁(慶運宮) 【지금의 덕수궁】 에 있었으며, 메이지 43년 8월에 일한병합과 함께 메이지 천황이 조서로써 태황제를 태왕(太王)이라 하고, 덕수궁(德壽宮) 이 태왕(李太王)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그를 후하게 대우하였지만, 다이쇼(大正) 8년 1월 22일에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3월 1일에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금곡리(金谷里)에 묻혔다. 이때 나이 6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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