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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통감 취임

메이지 42년 【융희 3년】 6월 15일에 추밀원(樞密院) 의장(議長)으로 전임되고, 동시에 부통감(副統監) 자작(子爵)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가 통감에 임명되었다. 이토 공(公)이 통감에 재임할 때는 물론 그가 전임한 후에도 한국의 발전과 일본과 한국의 융화 및 동양의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유의(留意)한 것은 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공은 같은 해 10월에 중요한 임무를 띠고 북만주(北滿洲) 시찰 길에 올랐으며, 같은 달 26일에 하얼빈 정거장에 도착하여 러시아 대장대신(大藏大臣) 코코프체프와 회견하고, 서로 나란히 정거장 안의 러시아 군대가 정렬한 앞쪽을 통과할 때, 한 흉한(兇漢)에게 저격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토 공의 부음이 전해지자 한국의 상하(上下)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제는 친히 소네 통감을 관저로 방문하여 조의를 표하였으며, 또한 조칙을 발표하여 공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공이 태자태사(太子太師)였으므로 특별히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0월 28일】 또 황태자는 사제(師弟)의 예(禮)로써 3개월 동안 그 상(喪)을 치렀다. 11월 1일에 공의 유해가 도쿄에 도착하였고, 4일에 국장(國葬)으로 그의 장례가 치러졌다. 이날 태황제(太皇帝)도 역시 통감 관저에 와서 조의를 표하였으며, 황제는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을 도쿄에 특파하여 장례식에 참석하게 한 것 외에, 다시 조서(詔書)로 한국에 대한 공의 공적을 발표하였으며, 또한 일·한 친교를 저해하지 말도록 국민에게 경고하였다. 이토 공을 저격한 흉한은 평안남도 진남포(鎭南浦)가 원적(原籍)인 안중근(安重根)이라는 자로, 현장에서 러시아국 관헌에게 체포되어 우리에게 인도되었으며 이어서 사형에 처해졌다. 【메이지 4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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