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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민왕의 실정

공민왕은 본래 자질이 영민하여 처음에는 국운을 일으키려 옛 강토 회복에 힘을 들이며 정치를 잘 보살피는 등 바람직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계속되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나머지 왕후인 노국대장공주가 붕어하자 왕은 밤낮으로 사모하고 애통하여 심성을 상하고 정치를 게을리 하였다. 그리하여 중년 이후에는 요승 편조에게 미혹되어 그를 스승으로 대접하며 정사를 맡기니 편조의 위세가 날로 높았다. 그는 마침내 삼중대광 영도첨의사, 취성부원군, 진평후 등 높은 지위에 올라 성명을 신돈이라 일컫고 음란하고 학정을 베풀며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자행하니 국정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공신 숙장과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많이 쫓겨나게 되었다. 이 같은 신돈의 포학과 참람한 행동에 공민왕도 차차 그를 꺼렸다. 신돈은 악행이 더욱 드러날까 두려워하여 임금을 시해하려는 반역을 꾀하다가 마침내 발각되어 유배 끝에 피살되고 말았다.

공민왕은 말년에 이르러 황음이 도에 넘치고 궁정의 풍기도 더욱 무너져 마침내 환시 무리에게 암살되었다. 그 다음에 제32대 우왕이 뒤를 이었으나 이때부터 내외의 국면이 급히 회전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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