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미술』 고려의 미술은 독특한 발달을 보인 것이 적지 아니하다. 당대 건축의 유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두셋 정도의 목조건물 이외에 석탑 따위뿐 아니라 【부석사의 무량수전】 특히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 말기 무렵의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랜 것이다. 그 구조의 자유로움과 형태의 장중하면서 웅장한 품격은 실로 당대 건축의 정화라 할 수 있다. 조각도 은진에 있는 관촉사의 미륵불과 같이 웅대한 것도 있고(광종 19년에 시작하여 38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니 높이 약 65척으로서 우리나리 최대의 석상임) 부석사의 목조 미륵상은 당당한 자세에 온화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을 갖추어 당대의 예술을 대표할 만한 걸작이다.
그림은 지금까지 전하는 유물이 매우 적으나 부석사 조사당의 벽화, 개풍군 수락동 고분의 현실 벽화, 공민왕의 천산수렵도 등이 가장 저명한 것으로 당시의 우수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문인화로서 이른바 사군자도 행하였다. 그리고 고려의 화가로는 중기의 이녕과 말기의 공민왕이 대표적이다.
【구양순체와 송설체[蜀體]】 그림과 아울러 글씨도 또한 볼 만한 것이 있으니 서체로는 신라 이후로 대개 당의 구양순체가 유행하다가 고려 말경부터는 원의 조맹부의 서법이 (송설체 또는 촉체라고도 함) 왕실과 상류사회에서 차차 행하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가로는 중기의 홍관· 탄연, 후기의 이암· 한수 등이 가장 이름이 높다.
(나) 『공예』공예의 유물로서 종, 향로, 불구, 경, 식기, 장신구, 문방구 등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특히 고려자기는 세계에서 비교할 만한 것들이 없을 만큼 발달했다. 화려하면서도 전아한 솜씨와 맑고 빛나는 빛깔과 완정한 형태와 아담한 문양 등은 전무후무한 예술이었으니 【청자상감】 그 가운데에서도 청자상감은 고려의 창의가 엿보이는 것으로 실로 고려청자의 정화이다.
(다) 『음악·기희』 음악은 아악과 속악으로 나눌 수가 있다. 아악은 궁중 의식에서 쓰던 것으로서 재래 음악에 송나라의 대성악 등을 가미한 것이며 속악은 일반 민중 사이에서 행하였다. 그리고 연극, 잡희며 기악, 무용, 각종 탈춤도 널리 행하였다. 【격구】 국기로는 격구가 있었는데 도성 안에는 국가시설로서 크고 넓은 구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