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이래 정권은 오랫동안 서인의 손에 있었으므로 여기에 눌려 지내던 남인 일파는 매양 울분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 효종의 상에 모후 조대비의 복이 기년(1주년)에 해당하다는 서인 송시열 등의 주장이 채납되자 남인 윤휴, 허목 등이 일어나 3년(2주년) 복이 옳다고 맹렬히 서인을 공격하였다. 또 현종 말년 효종비 인선후의 상에 역시 조대비의 복제 문제가 일어나 서인은 대공설(9개월), 남인은 기년설을 주장하였다. 【남인의 집권】 결국 이러한 문제로써 남인은 서인을 몰아내고 대신 정권을 잡았다. (이후 남인 중에 서인 영수 송시열을 죽이자는 파를 청남, 이 극단적 행위에 반대하는 남인을 탁남이라 함) 이때는 숙종이 이미 즉위한 뒤니 숙종은 남인들의 전단을 미워하여 6년에 남인을 쫓아내고 서인을 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