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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편 근세 (이씨 조선)
  • 근세의 후기(국기 4058-4243년, 영조 원년-순종 말)
  • 제5장 대원군 집정과 쇄국
  • 2.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2.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천주교 박해】 대원군은 위와 같이 많은 폐정을 고쳤으나 오직 외치(外治) 에는 눈이 어두워 오래 쇄국주의를 고집하고 천주교를 엄금하니 고종 3년 병인년 정월에 교인 남종삼 등과 프랑스 신부를 죽이고 8도에 영을 내리어 교도를 학살하였다. 【프랑스 군함의 침입】 그 신부 중 한사람인 리-덜(李德)이 몰래 배를 타고 빠져나가 천진에 있는 프랑스 파견 함대에 이 경과를 보고하였다. 이에 노한 프랑스 군함 3척은 8월에 인천 바다로 들어와 강화도를 거쳐 한강 양화진에까지 이르러 정찰하고 가더니 9월에 또 다시 프랑스 군함 7척이 와서 강화도를 침범하였다.

【이용희의 방어】 조정에서는 각처에 방비를 엄히 하는 동시에 중군 이용희로 선봉을 삼아 정병을 거느리고 가서 치게 하였다. 이용희는 통진을 지키고 초관 한성근은 문수산성을 지키다가 산성 남문에서 적의 한 부대를 맞이하여 이를 쳐부수었다. 【병인양요】 또 천총 양헌수는 중군의 명을 받아 5백여 명의 총포병을 거느리고 가만히 강화 정족산성에 들어가 매복하여 있다가 프랑스 병사를 맞이하여 총포를 퍼부어 물리치니 적의 함대는 할 수 없이 한 달 만에 강화에서 물러가게 되었다. 이 해가 병인년이므로 이 난을 병인양요라 한다.

【미국 선박 사건】그런데 이 해 여름에는 미국 상선「제너랄숴맨」호가 물자를 팔기 위하여 천진 방면으로부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평양에 이르러 쉽게 물러가지 않고 그들을 거부하는 관민들에게 폭행과 약탈을 가하므로 군민이 일어나 그 배에 불을 지르고 선원을 죽인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이 뒤에 미국 정부에 알려지자 미국 정부는 조선에 문책을 행하는 동시에 강제로 통상조약을 맺으려고 북경에 있는 미국 공사에게 훈령하여 아시아 함대를 출동하게 하였다.

【미국 군함의 침입】 그리하여 고종 8년 신미년에 미국 군함 5, 6척이 경기 근해에 나타나 그 중 3척이 강화 해협에 들어오려 하였다. 이때 광성진 포대에서 포문을 열고 싸움을 걸었더니 미국 함대로부터 포격이 집중되어 포대는 무너지고 중군 어재연은 상륙한 미국 병사를 역공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미군이 갑곶에 상륙하여 강화를 공략하려고 진영을 베푸는 사이에 강화 수병 5백 명이 밤중에 갑자기 적을 맹렬히 습격하여 그 둔소에서 쫓아버렸다. 【신미양요】 그리하여 미군 역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강화에서 물러가니 이것이 신미양요이다.

여러 차례 양인을 물리친 대원군은 의기양양하여 외국을 무서워하지 않고 더욱 척양 쇄국의 결심을 굳게 하고 【척화비】 서울 종로와 지방 각처에 척화비를 세워 글에 「양이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의하는 것이며, 화의를 주장하면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라 하여 적극적으로 양인과 싸워 화친하지 말 것을 전국민에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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