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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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편 근세 (이씨 조선)
  • 근세의 후기(국기 4058-4243년, 영조 원년-순종 말)
  • 제6장 일본과의 교섭과 개화운동
  • 3. 신문화의 수입

3. 신문화의 수입

【신사유람단과 영선사】 쇄국 조선은 문호를 개방하고 동시에 외국의 신문화를 수입하여 눈을 뜨게 되었는데 고종 18년 신사년(국기 4214년, 서기 1881년)은 조선 개화 운동사에 있어서 특서할만한 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해에 신사유람단이라 하여 박정양, 어윤중, 조준영, 조병직, 심상학, 홍영식 등 10여 명의 신사를 일본에 보내어 새로운 문물제도를 시찰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아 69명의 청년학도를 이끌고 청국 천진에 가서 모든 새로운 기계에 관한 지식을 배우게 하였던 까닭이다. 이들의 유람과 유학은 결국 청·일 양국을 통하여 서양의 신문화에 접촉하여 그것을 배워오는데 큰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제도 개혁】 이와 동시에 안으로 구제도를 다소 개혁하여 의정부에 통리 기무 아문이라는 것을 (청국을 모방하여) 새로이 두고 그 밑에 여러 기관을 공식적으로 설치하였으며 또 군제를 고치어 무위영과 장어영의 두 영문을 신설하고 일본인 굴본예조(堀本禮造, 호리모토 레이조)를 초빙하여 신식 훈련을 베풀었다. 한편으로 서울의 양반 자제 중에서 우수한 사람을 뽑아 사관생도라 이름 하여 역시 일본식 교련을 받게 하였다.

【개화파와 수구파】 그러나 이때 국내에는 각계를 통하여 신구의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신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은 개화파라 지목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수구파라 하여 그 사이에 암투와 반목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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