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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천진조약과 러시아 세력의 발동

3. 천진조약과 러시아 세력의 발동

【한성조약을 맺음】 이 정변이 있은 다음 달에 일본은 공사관 습격, 거류민 학살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전권대사 정상형(井上馨, 이노우에 가오루)에게 보병 2대대를 거느리고 경성에 들어오게 하니 정부는 크게 낭패하여 을유년 1월 9일에 한성조약을 맺고 겨우 해결하였다. 그러나 일, 청 양국의 병사는 그대로 서울에 머물러 있었다.

【천진조약】 그 해 4월에 일본 정부는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을 전권대사로 삼아 천진에 보내어 이홍장과 담판하게 하고 드디어 4개월 안으로 일·청 양국은 조선에서 철병할 것과 장래 조선에 군대를 보낼 일이 있을 때는 두 나라가 서로 미리 알릴 것 등에 관한 내용을 약정하였다. 이 조약에 의하여 얼마 뒤에 두 나라 병사들은 물러갔으나 원세개는 통상 사무의 전권 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러나 원세개의 간섭이 날로 심하여지자 사대당도 차츰 이를 싫어하는 경향이 생기었다.

【한·러 통상 조약】 전년에 러시아는 위패(韋貝)라는 사람을 조선에 보내어 조선의 외교 고문 목인덕의 알선으로 한·러 통상 조약을 맺고 위패는 이내 공사로 머무르게 되었다. 또 그는 조선과 육로 통상 조약을 맺고 조선인과 러시아인의 국경 무역의 자유와 또 러시아인을 위하여 부령을 개방할 것을 규정하였다. 그는 매우 재간이 있어 궁중에 자주 출입하여 왕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차츰 친러시아 일파가 생기게 되니 일본과 청국의 힘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 이때 러시아와 매우 사이가 좋지 못한 영국은 러시아의 세력이 조선에서 날로 커져가는 것을 보고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마침내 고종 22년 을유년(국기 4218년, 서기 1885년)에 이르러 영국은 동양 함대를 보내어 전라도의 거문도를 점령하고 포대를 쌓으며 병영을 세웠다. 이에 러시아도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어 조선 정부에 항의를 제출하였다. 이홍장이 중간에서 러시아는 조선 땅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세운 뒤 영국은 24년 정해년에 비로소 거문도에서 물러났다. 이와 같이 조선을 두고 청나라와 러시아, 러시아와 영국, 일본과 러시아, 일본과 청나라의 암투가 날로 심하여져 차츰 조선은 그들의 씨름터가 되었다.

【신문화 채용】 이러는 동안 새 문화의 물결은 밀려들어 고종 21년 갑신년에는 정오에 대포를 놓아 시간을 알리고, 제중원을 세워 신식 치료법을 베풀고, 육영공원을 세워 영어를 중심으로 한 양학을 가르치고, 기타 기계국(병기창)·전환국(화폐 제조국)을 두어 신식 병기, 신식 화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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