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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민중의 자각과 새 운동

【정치 학술 단체의 난립】 국내의 한편에는 일진회와 같은 매국노적 반역분자 준동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참된 민족적 의식과 자각에서 불타오른 여러 가지의 새 운동이 마치 비 끝의 대순과 같이 일어났다. 정치단체로는 헌정연구회,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등이 전후하여 생기고 교육 문화 단체로는 국민교육회, 흥사단, 청년회 및 지방명을 띤 각 학회 즉 서북학회(평안·황해·함경), 기호학회(경기·충청), 호남학회(전라), 교남학회(경상), 관동학회(강원)의 여러 학회가 생겨 민중의 신교육과 계몽운동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각 지방학회는 본래 학술을 위주로 하기보다는 지방적 색채를 띠고 있었으므로 각기 세력 다툼에 분주하여 대립과 암투가 계속되어 나쁜 영향을 사회에 끼침이 적지 않았다.

【학교의 설립】 그러나 민간의 교육열은 이러한 단체가 일어남에 따라 서울 시골을 물론하고 무수한 사립학교가 세워졌으니 오늘날 서울의 보성, 양정, 휘문의 여러 남자 학교와 진명, 숙명의 두 여학교는 다 이때에 시작된 것이다. 배재, 이화의 두 남녀 학교는 이보다 오래 전에 선교사들의 손으로 세운 것이다. 지방 학교로는 평양의 대성학교, 강화의 보창학교 등이 한때 이름을 날렸다.

【독립신문 발간】 언론 기관으로는 건양 원년 병신년(국기 4229, 서기 1896년)에 서재필이 미국으로부터 돌아와서 창간한 독립신문이 조선신문의 처음이었다. 그 뒤를 이어 황성신문 등이 나와 모두 한국의 독립을 강조하고 일본의 정책을 공격하였고, 그 후 대한매일신보도 발간되어 배일 사상을 북돋아 주었다. 이 매일신보는 영국인 배설과 양기탁이 시작한 것으로 오늘의 「서울신문」의 시조가 되었다. 이 신문은 어떻게나 심히 배일을 부르짖었는지 통감부는 영국과 교섭하여 배설을 상해로 쫓아내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양기탁이 중심이 되어 더욱 붓 끝을 날카롭게 하여 이를 계속하였다.

【국문 보급】 자각적 문화 운동의 결과로 또 신문체와 국문으로 된 잡지와 서적이 이어 나오고 신소설이 출판되었으며 외국 문학의 번역도 몇 가지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말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하는 학자도 나오게 되어 오늘의 어문 정리와 역사 연구에 많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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