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 우리나라의 생활
  • 넷째 가름 삼국의 흥망과 그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둘째 조각 백제와 고구려는 어떻게 쇠망하였으며 그 부흥 운동은 어떠하였는가?
  • ④ 고구려의 내부 분열과 그 미친 영향은 어떠하였는가?

④ 고구려의 내부 분열과 그 미친 영향은 어떠하였는가?

고구려는 보장왕 때에 연개소문이 막리지[수상]가 되어 국론을 통일하고 정치를 잘한 까닭에 국력이 매우 튼튼하여 능히 당 태종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죽은 후 그 아들 남생과 남건·남산 사이에 정권 싸움이 일어나 남생은 쫓겨서 옛 서울 국내성으로 달아나 당나라에 구원을 청하고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는 남부 12성의 민호를 거느리고 신라로 달아났다. 이에 당 고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명장 이적을 보내서 신라군[김인문]과 연합하여 평양성을 함락하고 보장왕과 남건·남산 등 고구려 사람 수십만 명을 당나라로 잡아갔다. 이것은 보장왕 27년(신라 문무왕 8년, 서기 668년)에 일어난 일로서 고구려는 28왕 705년 만에 망하였다.

고구려는 삼국 중에 제일 강한 나라로서, 일찍이 수·당의 백만 대군을 물리쳤으며 멸망 당시에도 국력이 쇠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일조에 망하게 된 원인은 내부 분열로 인한 것이다. 우리는 내부 분열이 국가와 민족에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이로써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연개소문은 천(泉)개소문이라고도 하나 이것은 당 고조 이연(李淵)의 이름을 피하여 연(淵)과 뜻이 같은 천(泉)으로 고친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