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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째 가름 삼국의 흥망과 그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셋째 조각 삼국의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① 정치제도는 어떻게 짜여 있었는가?

① 정치제도는 어떻게 짜여 있었는가?

삼국은 모두 군주 밑에 여러 가지 관직을 설치하였다. 먼저 고구려의 관제를 보면 대로·막리지·대형·소형 등 10여 관등이 있고, 서울을 5부[동·남·서·북·중]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부의 장관을 대가 혹은 대인이라 하고, 지방도 5부로 구분하고 부 밑에 성을 두어 부의 장관을 요살, 성의 장관을 도사라 하였다.

백제는 좌평·달솔 등 16관계와 내외 22부의 관청이 있고 서울은 5부[전·후·상·중·하], 지방을 5방으로 구분하고 방 밑에 군을 설치하였다.

신라는 이벌찬·이찬 등 17관제가 있고 서울을 6부[6촌]으로 구분하고 지방에 주·군을 설치하였으며, 지방의 중요한 곳에 정(停)이라 하는 군단을 설치하였는데 그 수는 영토의 확장으로 인하여 일정하지 아니하였다.

삼국의 군주 중 고구려, 백제는 모두 세습하였으나 신라는 왕족[박, 석, 김 3성] 중에서 선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왕족 중에도 성골[부모 양계가 모두 왕족인 것], 진골[부모 양계 중 한편이 왕족인 것]의 구별이 있어 처음에는 성골 중에서 임금을 선거하더니, 진덕여왕에 이르러 성골이 절멸한 까닭에 진골 중에서 국왕을 선거하였으며 때로는 세습도 하였다.

그리고 또 신라에는 옛날부터 화백이라 하는 의회 제도가 있어 국왕의 선거와 외국과의 전쟁 기타 중대한 일을 토의하였는데, 그 회의는 자못 민주적이어서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성립하지 못하였다 한다. 대개 신라 정치는 민주적으로 행하였으나 6부의 귀족 즉 성골·진골·6두품 등 8품 성골이 아니면 정치에 간섭하지 못하였으며, 그 중에도 성골·진골이 정권을 잡고 귀족 정치를 하였다. 고구려는 5부의 대개가 정권을 잡고 백제도 연·해·사·진씨 등 8족이 정권을 잡고 귀족 정치를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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