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혜공왕 이후 귀족 사회가 부패하여 왕위 쟁탈전이 자주 일어나 조정의 기강이 무너지고, 6부의 귀족과 지방의 부호는 토지와 인민을 점탈하여 사치와 향락 생활을 마음대로 한 까닭에 농민 대중은 귀족 정치에 대하여 큰 불평을 품고 있었다. 그중에도 차별대우를 받고 있던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이 더욱 불평을 품었다. 그런데 51대 진성여왕이 즉위한 뒤, 간신들이 정권을 잡고 더욱 정치를 어지럽게 하였으며, 흉년임에도 불구하고 과중한 세금을 징수한 까닭에, 각지에 민란이 일어나 귀족 정치에 반항하였다. 이 틈을 타서 군웅이 벌떼 같이 일어나 신라 말의 대동란을 빚어내게 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궁예와 견훤이다.
[신라 왕계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