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본디 승려 출신으로서 진성여왕 5년(단기 3224년, 891년)에 민심이 소란한 틈을 타서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 옛 땅인 송악[개성]에 웅거하여 고구려의 원수를 갚는다 하고 국호를 후고구려라 하였다.(서기 895년) 뒤에 국호를 마진 혹은 태봉으로 개칭하고, 서울을 철원[경원선 월정리]으로 옮기고 조령 이북 땅을 거의 다 차지하였다. 견훤은 농민의 아들로서 서변 군직을 띠고 있다가 궁예보다 일 년 뒤에 무진주[광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백제의 원수를 갚는다 하고 국호를 후백제라 하며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 고지를 거의 다 차지하였다. 이에 반도는 옛날과 같이 다시 3국으로 분열하였으므로 이를 후삼국이라 한다. 이중에 가장 강성한 것은 궁예였으나 궁예는 차츰 교만하여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가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므로, 그 부하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들이 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방축하고 궁예의 부하 중에 가장 인망이 높은 왕건을 추대하였다.(단기 3251년, 918년) 이 사람이 곧 고려 태조이다.
고려 태조는 즉위 후, 연호를 천수라 하고 서울을 자기의 고향인 송악으로 옮겼다. 안으로 궁예의 폐정을 개혁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밖으로 신라를 동정하고 후백제를 누르자 신라의 여러 고을이 저절로 와서 항복하여 그 영토가 점점 넓어지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신라는 영토가 나날이 줄어들고 서쪽으로 후백제의 침략이 심한 까닭에 국가를 더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끝 임금 경순왕은 드디어 고려 태조에게 나라를 내놓았다. 이것이 천수 18년(단기 3268년, 935년), 신라는 56왕 992년 만에 망하였다.
이와 같이 고려 태조는 신라를 합병하고 이듬해 후백제를 쳐서 40여 년 동안 분열하였던 반도를 재통일하였다.
[익힘]
1. 신라가 민란을 방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2. 궁예와 견훤은 어떻게 나라를 세웠는가?
3. 고려 태조는 어떻게 후삼국을 통일 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