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망한 뒤 태자 대광현이 엎어진 조국을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7,8년간 독립 운동을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고려 태조 17년에 부하 수만 명을 데리고 핏줄이 같은 고려로 망명하였다. 이와 전후하여 발해의 왕족 및 귀족 등 고구려 계통의 사람 수십만 명이 고려에 귀화하였다. 그러나 고국에 남아있던 왕손 열만화(烈萬華)는 압록강 유역에서 정안국을 건설하고, 그 손자 오현명이 송나라와 연락하면서 요를 치려고 하다가 실패하였다.(단기 3314년, 981년) 그 후 60여 년을 지나 고왕의 후손 대연림이 요나라 동경[요양]에서 흥요국을 건설하고(단기 3362년, 1029년), 그 후 또 80여 년을 지나 발해 유민 고영창이 또한 동경에서 대원국을 건설하여(단기 3449년, 1116년] 발해의 부흥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모두 힘이 모자라서 실패하였으나 나라가 망한 뒤 200여 년을 두고 줄기차게 독립 운동을 계속한 것은 고구려 유민의 꿋꿋한 넋을 잘 보여 준 것이다.
[익힘]
1. 발해의 멸망은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2. 발해 유민은 무슨 까닭으로 고려에 많이 들어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