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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생활
  • 다섯째 가름 신라·발해의 성쇠와 그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셋째 조각 신라 발해의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③ 신라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였으며 불교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③ 신라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였으며 불교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신앙도 삼국 시대와 같이 천신·일월신, 기타 잡신을 믿은 까닭에 무당과 점쟁이가 유행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보다도 불교의 신앙이 더욱 성하였다. 불공을 드리고 사찰과 탑을 일으키면 나라가 흥하고 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는 상하를 통하여 널리 유행하고 전국 각지에 절과 탑이 많이 서고 고명한 승려가 많이 나게 되었다. 신라 문화가 찬란한 꽃을 피게 된 것은 불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전국 각지에 있는 이름난 절은 대개 다 이 시대에 창건한 것이지만, 당시 가장 유명한 것은 경주의 사천왕사·봉덕사·불국사, 합천의 해인사, 영주의 부석사, 구례의 화엄사 등이다. 승려로는 통일 당시의 원효와 의상이 가장 유명하다. 원효는 불경을 많이 저술하고, 의상은 당나라에 들어가 화엄종을 연구하고 돌아와 이것을 전파하여 크게 불교를 일으킨 까닭에 두 사람은 다 우리나라의 불성(佛聖)으로 치는 바이다. 그리고 혜공왕 시대의 중 신행은 당나라로부터 선종을 수입하였는데 이후 우리나라의 불교는 선·교 양종으로 대립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이밖에 신라 승려로 당나라에 들어가 크게 활약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원측과 혜초이다. 원측은 통일 당시 당나라에 들어가 불경을 많이 번역하고 저술하여 당나라 불교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혜초는 성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인도와 서역을 순례하고 당나라에 돌아와 여생을 불교에 바쳤는데 그가 여행 중에 기록한 『왕오천축전』은 동서 교통사상 중요한 문헌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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