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는 동명고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서경으로 천도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으나, 그 아들 정종이 태조의 유지를 이어서 광군사를 설치하고 군사 30만 명을 양성하여 거란에 대비하고 서경 천도도 계획하였다. 다음 광종 때에 청천강을 건너 가주[박천]·태주[태천]·위화진[운산]을 설치하여 영토를 박천강까지 개척하였다. 성종 때에는 거란이 침입한 기회를 이용하여 여진[말갈족]을 쳐서 압록강 하류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동북면으로는 정종 때에 정주[정평], 문종 때에 함흥까지 진출하고, 예종 때에 여진을 정벌하여 일시 북청까지 나아갔으나 함흥과 북청 지방은 여진[금]의 세력이 매우 강하므로 곧 그들에게 되돌려주었다. 태조의 북진 정책은 고려 일대를 통하여 끊임없이 계속하였으나 대륙 북방에 요[거란], 금[여진]의 세력이 강한 까닭에 고려의 영토는 서북으로 압록강 하류, 동북으로 정평까지밖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말기 고종 때에 몽고[원]의 침입으로 인하여 화주 지방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공민왕 때에 원나라가 쇠약한 틈을 타서 화주를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다시 북진하여 경성 지방까지 개척하고, 우왕 때에 최영이 요동 정벌을 일으켜 동명고강을 회복하려고 하였으나 이성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고려 왕계 (1)]
[익힘]
1. 태조의 서경 개척의 뜻은 어디에 있었는가?
2. 고려의 영토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