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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째 가름 고려조의 변천은 어떠하였으며 그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넷째 조각 고려조의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④ 신앙생활과 풍속은 어떠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남은 자취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④ 신앙생활과 풍속은 어떠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남은 자취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고려시대에도 재래의 민간 신앙이 많이 유행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불교와 지리 풍수·비기 도참[예언]이 가장 성하였다. 불교는 국가를 보호한다는 신라 시대의 사상이 그대로 계속되어 태조가 이것을 독실히 믿고 국교로 정하여 자손에게 유언하여 역대 임금이 또한 이것을 믿었으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부처의 힘을 빌어서 해결하려고 하였다.

거란과 몽고가 침입할 때에 대장경판을 새긴 것은 이러한 신앙심이 두터웠던 까닭이다. 국가에서는 절과 탑을 많이 일으키고 토지와 노비를 주어서 이것을 보호하고 선과[승려의 과거] 승직[국사·왕사 등], 도승법[승려의 자격을 주는 법령] 등을 제정하여 승려를 우대한 까닭에 승려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높았으며, 왕족 양반으로서 출가한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대각국사 의천이다. 고려 전성 시기에 개경에는 300여 개의 절이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흥왕사·현화사·왕륜사이며 2월 연등회, 4월 8일, 7월 백중, 11월 팔관회 등 불교 의식이 성행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지금도 절에서 많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승려가 점점 타락하고, 또 새로 주자학이 들어와 불교를 배척한 까닭에 불교는 쇠퇴의 일로를 걷게 되었다.

지리 풍수와 비기 도참은 신라 말기의 중 도선이 당나라로부터 전래한 것이다. 태조가 크게 이것을 믿고 불교와 아울러 그 자손들에게 유언하여 역대 임금 또한 이것을 믿어 명당을 구하고 지덕을 보려고 한 까닭에 여러 가지 폐해를 남겼다. 이것이 근세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해독을 끼치고 있다.

 [익힘]

1. 고려의 불교 사상은 어떠하였는가?

2. 의천은 어떠한 사업을 하였는가?

3. 고려의 불교 의식은 어떠한 것이 있었는가?

4. 지리풍수와 비기도참은 우리나라에 어떠한 해독을 끼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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