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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째 가름 고려조의 변천은 어떠하였으며 그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넷째 조각 고려조의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⑤ 교학은 어떠한 경로를 밟아서 진흥하게 되었는가?

⑤ 교학은 어떠한 경로를 밟아서 진흥하게 되었는가?

고려는 초기에 국자감[국립 종합 대학]을 개경에 설치하고, 서경과 12주목에 또한 학교를 두어 유학·의학·율학·산학·복학 등을 교육하였다. 과거를 설치하고 시·부·경학으로 인재를 등용하였기 때문에 유학 즉 한문이 가장 성하였다. 그러나 고려의 교육과 학문이 일어난 것은 중기 이후의 일이다. 문종 때에 시중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하여, 12도의 사립학교가 일어나 인재를 많이 교육한 까닭에 문풍이 크게 일어나고 문사를 배출하였다. 그 전성 시기는 문종·숙종·예종·인종·의종 시대이며, 시인으로는 인종 조의 정지상, 문장가로 문종 조의 박인량, 인종 조의 김부식, 고종 조의 이규보가 가장 유명하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는 지금 남아있는 우리나라 역사 책 가운데 가장 오랜 책이며, 이보다 150여 년 후에 된 것이지만 충렬왕 때의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와 아울러 우리나라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명종 이후 무신이 정권을 잡고 또 몽고의 난이 30여 년 계속되었기 때문에 학교가 극히 황폐하였다가 원나라와 강화한 후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충렬왕 때의 유신 안향[뒤의 이름은 안유]이 사재를 털어 국학 즉 성균관[국자감을 개칭한 것]을 재흥하고 원나라로부터 주자학에 관한 서적을 많이 구입하여 학생을 교육한 까닭이다. 당시 원나라에는 남송에서 일어난 주자학이 성행하고 충선왕이 원나라 수도에서 만권당이라 하는 연구소를 설치하여 원나라의 일류 학자 조맹부, 우집 등과 더불어 학문을 연구하였으므로 우리나라에도 자연히 주자학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에 백이정, 우탁, 이제현, 이색, 정몽주, 이숭인, 정도전, 권근 등의 무리를 낳게 되었다.

 [익힘]

1. 고려 초기의 교육 제도는 어떠하였는가?

2. 고려의 사립학교는 어떻게 융성하였는가?

3. 고려의 학교는 무슨 까닭으로 쇠퇴하였는가?

4. 주자학은 어느 때 누가 전래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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