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은 과학적 창작에도 천분이 매우 높아 이에 관한 여러 가지 기계를 발명 또 제작하였으니 대·소간의, 혼천의, 일구, 일성정신의, 자격루, 흠경각, 측우기 등이 그 중요한 것으로 정인지와 정초 등은 이에 관한 이론을 맡고 장영실과 이전 등은 실지를 담당하였다. 이 모두가 다 세종대왕의 예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더욱이 정교한 것은 흠경각으로서 각 가운데에 옥루기륜이란 커다란 물시계를 비치하고 물로써 이를 치게 하여 여러 기관이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 천시의 운행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또 따로 지산(紙山)을 만들고 그 산의 사방에 사철의 농가 풍경을 장식하고 인물·새·짐승·풀·나무의 형상을 만들어 이것을 철에 따라 배치하여 백성들이 농사짓기에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는가를 살폈다.
그리고 또 측우기는 우량을 측정하는 기계로서 이를 서운관에 두고 또 각 도, 각 읍에도 나누어 주어 국내 각 지방의 우량을 밝힌 것으로 이는 세계에 있는 기계적 측우의 시초이며 이 밖에도 천문도의 석각石刻), 천문학 도서의 편찬, 북극 고도의 측정 등이 있었다.
【○ 측우기는 서양에 있어서는 이태리 사람 베네데토 카스텔리(Benedetto Castelli)가 서기 1639년에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세종 24년(서기 1442년)에 만든 것과 비교하면 실로 190여 년이 뒤떨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