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삼포를 개항한 뒤에 조선에 와서 사는 왜인이 매우 많게 되자 그들의 횡포도 적지 않았으므로 그곳 관리들은 왜인을 다소 압박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중종 5년(단기 3843년, 1510년)에 삼포의 왜인이 부산 첨사 이우증에게 불평을 품고 대마도 왜인의 원조를 얻어 부산진 성을 함락시키고 이우증을 죽이며 동래성을 포위하고 웅천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조정에서 유담년 등을 보내어 이를 평정하니, 이것이 곧 “삼포 왜란”이다.
이 난 뒤에 조정에서는 삼포를 폐쇄하고 왜인과의 교통을 끊었다. 그러자 대마도는 곧 사활 문제가 되어 실정 막부(室町幕府)를 통하여 무수히 애걸하므로 조정에서는 이에 제포 한 곳만을 열기를 허락하고 세견선 수와 세사미두의 수를 줄이고 다시 조약을 맺었다. 이것이 곧 “임신약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