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의 다음 임금 영조는 일찍이 자신이 당쟁의 와중에 휩쓸려 들어가서 갖은 고난을 겪어온 터이라 그 폐해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므로 왕위에 오르자 곧 탕평론을 주장하여 노·소론의 영수를 불러 친히 화합하기를 권하였다. 정조도 또한 탕평에 힘썼으므로 당쟁은 비록 뿌리는 뽑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이 뒤에는 전일과 같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영조의 업적을 살펴보면 탕평정책 이외에 농사를 장려하고 악형을 없이하며 미신을 물리치고 사치한 풍속을 금하며 균역법을 행하여 평민층의 부담을 가볍게 하였다. 준천사를 두어 하천을 정리하고 측우기를 국내 각지에 배부하여 우량을 측량하게 하고 혼천의와 누각을 중수하며 산성을 쌓고 해골선을 제작한 것 등이 다 훌륭한 업적이라 하겠다. 이 밖에 좋은 서적도 많이 편찬되었다. 정조는 특히 농사에 주력하여 이에 관한 서적을 널리 간행하여 배부하였고 규장각을 세우고 많은 서적을 간직하여 여러 신하에게 독서와 연구의 편의를 주었다. 또 귀중한 서적을 많이 편찬하고 수많은 활자를 만들어 이를 간행하였으므로 문화가 다시 일어나고 유명한 학자도 쏟아져 나와서 옛날 세종·세조·성종의 때와 방불한 느낌이 있었다.
[익힘]
1. 영조·정조의 당쟁에 대한 정책과 그 결과를 말하여 보라.
2. 정조는 문화진흥에 어떻게 힘썼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