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오기는 선조 말년 무렵으로 민간에서 간혹 믿는 흔적이 보이더니 인조 때에 이르러 천주교에 관한 서적과 서양 문물이 들어오자 그 신앙의 범위가 적이 넓어지며 서학 혹은 천주학이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영조·정조 때에는 그 교세가 늘어 황해·강원·경기·충청 등 각 도에서 성행하였다.
남인이 정권을 빼앗긴 뒤에 그 재주 있는 이는 학술 연구에 힘썼다. 그 중에 천주교리에 유의하여 마침내 신앙으로 나가는 이가 적지 아니하였으니, 이승훈·이가환·정약종·정약용 등 일대 명사들이 다 이에 감염되었다. 더욱이 이승훈은 북경에 가서 서양인 선교사에게 세례까지 받고 관계 서적을 다수 구입하여 돌아왔다.
신도들 가운데에는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혹은 부모의 제사를 폐하고 혹은 조상의 위패까지 불살라 종래의 유교 도덕을 파괴하는 자가 많았으므로 조정에서는 자주 금령을 내리고 또 북경으로부터 서적을 구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이미 유행하는 천주교 서적을 모아 불살라 버렸으나 그들의 굳은 신앙은 변함이 없었다.
이 뒤에 청인의 천주교 신부 주문모가 들어와 전도에 종사하고 또 서양인 신부 세 사람 모방(羅伯多祿)·샤스탕(鄭牙各伯)·암베르(范世亨)이 와서 갖은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전도하자 법망을 뚫어가면서 이를 믿는 자가 매우 많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최후의 탄압 정책을 써서 주 신부 및 서양인 신부 이하 다수의 신도를 죽이니 이것이 곧 유명한 순조 시대의 신유사옥·헌종 시대의 기유사옥이다. 조선인으로서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도 헌종 12년(단기 4179년, 1346년)에 또한 순교하였고 고종 3년에 또다시 박해가 있었다.
[익힘]
1. 천주교는 어떤 경로를 밟아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2. 천주교의 전도 운동은 어떠하였는가?
3. 조정에서는 천주교에 대하여 무슨 까닭으로 어떻게 탄압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