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조약에 의하여 부산·원산·인천 등 세 항구를 차례로 열었으며 그 해(단기 4209년) 수신사 김기수가 일본에 가고 일본에서도 화방의질(花房義質, 하나부사 요시모토)이 대리 공사로 서울 서문 밖 청수관[천연정]에 와서 있게 되었다.
18년(단기 4214년, 1881년) 4월에 박정양·어윤중 등 10여 명의 신사유람단을 일본에 보내어 새 문물제도를 시찰하게 하고 한편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고 69명의 청년 학도를 이끌고 천진에 가서 새 기계에 관한 지식을 배워오게 하였다.
이들은 외국 문물의 영향을 받아 이듬해 임오년에 통리 기무 아문이란 관청을 설치하고 그 밑에 군무·통상 등 여러 기관을 두었다. 그 다음에 군제를 고쳐 장어영과 무위영의 두 영문을 두고 일본인 굴본예조(堀本禮造, 호리모토 레이조)를 데려와서 신식 교련을 시키고 이를 별기군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양반 자제 중에서 우수한 사람 100여 명을 뽑아 이를 사관 생도라 하고 역시 일본식 교련을 받게 하였다.
[익힘]
1. 새 문화는 어떻게 하여 실어 들였는가?
2. 여러 제도의 개혁은 어떻게 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