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천주교가 들어오자 특권 계급의 횡포에 시달린 민중들은 이 새로운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였으나 천주교가 여지없이 압박을 받자 민중은 한동안 의지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철종 말년 경주 사람 최제우가 동학을 부르짖음에 따라 민중은 또다시 이에 귀의하였던 것이다.
동학은 서학[곧 천주교]에 대한 반대적 처지를 표시한 이름이며 겉으로는 서학을 배척하는 것 같이 보였으나 실상은 서학의 자극과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래로 믿어 오던 하느님을 근본을 삼고 거기에다가 유·불·선 3교의 교지를 합쳐서 “인내천” 사상을 나타낸 것이었다.
동학에 대한 민중의 신봉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이에 공포를 느낀 조정에서는 마침내 탄압의 손을 내려 교주 최제우를 혹세무민하는 우두머리라 하여 고종 원년(단기 4197년, 1884년)에 대구에서 죽이고 동학의 신봉을 일절 금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그 운동은 새 교주 최시형의 계속된 선포로 말미암아 피압박 계급에게 더욱 깊이 침투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