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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덟째 가름 최근세의 나라 사정과 그 사회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셋째 조각 동학당의 반항 운동은 어떠하였으며 청·일 전쟁은 어째서 일어났는가?
  • ② 동학당은 어떻게 반항 운동을 일으켰으며 그 영향은 어떠하였는가?

② 동학당은 어떻게 반항 운동을 일으켰으며 그 영향은 어떠하였는가?

도탄에 신음하는 민중의 사정이 갈수록 가련함에도 불구하고 특권 계급의 악정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민중의 이에 대한 감정은 더욱 커져서 차차로 소동을 일으켰는데 그들 뒤에는 사실상 동학당의 부채질도 있었다.

고종 31년 갑오년(단기 4227년, 1894년)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 물세를 잘라 사복을 채우자 수많은 민중은 분함을 참지 못하여 그 해 2월에 전봉준을 수령으로 “제폭 구민”을 표방하여 반항하였다. 이 무리를 중에 동학당이 매우 많았으므로 이를 “갑오년 동학란”이라 한다. 이 운동이 한번 일어나자 사방에서 이에 향응하여 고부·정읍·태인·금구 등지를 함락시키고 4월에 전주를 또한 빼앗았으며 전라·충청·경상·경기의 동학교도도 이에 응하여 그 형세가 매우 창궐하였다.

조정에서는 크게 낭패하여 초토사 홍계훈으로 치게 하였으나 도처에서 패전하였으므로 한편 청국에 구원병을 청하여 와서 이듬해 6월에 전봉준을 잡아 서울에서 사형에 처하고 겨우 난을 평정하였다. 그러나 이 결과는 마침내 청일 전쟁을 보게 되고 우리나라도 크나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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