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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째 조각 일본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강탈하였는가?
  • ③ 일본은 우리나라를 어떤 모양으로 강탈하였는가?

③ 일본은 우리나라를 어떤 모양으로 강탈하였는가?

이와 같이 나라를 위하는 애국지사의 활동도 컸지만 일본이 한국을 강탈하려는 야심도 하루하루 더 노골화하여 갔다. 이때에 매국적 일진회가 일본과 서로 응하여 한·일 합병론을 주장하자 우울한 저기압이 온 나라에 덮이고 있었다.

융희 4년(단기 4243년, 1910년) 7월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통감으로 와서 헌병을 늘어놓고 백방으로 협박 공갈하며 한국을 강탈할 계획을 진행시키자 우리 매국 내각도 이에 찬성하여 8월 21일 소위 병합의 최후 문서가 작성되었다. 이튿날 어전 회의에서 애국 중신들의 비장한 반대가 있었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고 억지로 재가를 밟았다.

한국 강탈이 이렇게 정식으로 결정되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일주일이 지난 8월 29일에 비로소 세상에 발표하니, 이에 우리나라는 역사가 생긴지 4243년 만에 횡포하고 간악한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씨 조선은 27대 519년만에 망하였으며 국민은 이로부터 36년 동안 갖은 고난 속에서 울어왔다.

청천벽력과 같은 이 보도가 세상에 한 번 전해지자 온 나라가 모두 노엽고 원통해하며 통곡 속에 파묻혔으며 김석진·홍범식·이만도·황현 등과 이 밖의 유명, 이름 없는 각 계급 사람들이 한 번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였다. 각처에서는 또 의병이 일어나서 목숨을 걸고 일병과 싸웠으며 수많은 지사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조국의 광복을 도모하였다.

 ○ 국권 피탈 당시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내부 임선준(任善準)

 탁지부 고영희

 군부 이병무

 법부 조중응

 학부 이재곤

 농상공부 송병준

 [근세조선 왕계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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