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3년(단기 4232년, 1899년)에는 지석영이 종두법을 수입한 것을 기초로 서울에 광제원을 두어 국비로 빈민 치료 및 종두 보급에 노력하였다. 8년에는 프랑스 교사를 초빙하여 의학교 및 부속병원을 설치하고 이듬해 적십자 병원을 두었다. 뒤에 이를 정리하여 대한의원이라 일컫고 의육부를 부설하여 일본 의원을 채용하며 의사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융희 3년에는 각도에 자혜 의원 관제를 발포하여 빈곤자의 치료에 종사하게 하며 동시에 방역 규칙·종두 규칙·청결 검사 규칙 등을 실행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