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1권)
  • 동국역사 권1(삼국기(三國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계묘(癸卯) [기원전 18년]

계묘(癸卯) [기원전 18년]

【마한 개국 177년 ○ 신라 혁거세 40년 ○ 고구려 유리왕 원년 ○ 백제 온조왕(溫祚王) 원년 ○ 한 성제 홍가 3년 ○ 일황 수인 12년 ○ 서력 기원전 18년】

봄에 백제(百濟) 시조(始祖) 고온조(高溫祚)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온조왕이다. 처음에 고구려(高句麗) 왕 고주몽(高朱蒙)이 졸본부여(卒本扶餘)에서 난을 피하였는데, 졸본부여 왕의 두 번째 딸과 혼인하고 또한 그 왕위를 물려받아서 2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첫째가 비류(沸流)이고 둘째가 온조이다. 예씨(禮氏)에게서 태어난 유리(琉璃, 類利)가 고구려 태자가 되었으므로 비류 형제가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오간(烏干), 마려(馬黎) 등 10명과 함께 남쪽으로 도망가 한산(漢山)에 이르러서 위례성(慰禮城)을 쌓고 살았다. 그 후 13년에 비류는 그의 백성을 해안가 미추(彌鄒)【지금의 인천부(仁川府)】에 정착하게 하였다. 온조는 하남(河南) 위례성【지금의 광주(廣州) 옛 읍】에 도읍을 정하였으며, 10명의 신하를 보필하는 재상[輔相]으로 삼고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하였다. 그 후에 비류가 미추 지역이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지내지 못하였는데, 위례성에 와서 백성이 편안하고 태평하며 도읍이 이미 정해진 것을 보고 부끄럽고 화가 나서 죽었다. 이에 그 백성이 모두 위례에 귀화하였으므로 다시 국호를 정하여 백제라고 하였다. 또한 강역(疆域)을 정할 때에 북쪽은 패하(浿河)【지금의 곡산(谷山) 능성강(能成江)이니 바로 패강 상류이다.】에 이르고, 남쪽은 웅천(熊川)【지금의 공주(公州)】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이며, 동쪽은 주양(走壤)【지금의 춘천(春川)】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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