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1권)
  • 동국역사 권1(삼국기(三國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계유(癸酉) [373년]

계유(癸酉) [373년]

【신라 내물왕 17년 ○ 고구려 소수림왕 2년 ○ 백제 근초고왕 27년 ○ 동진 효무제(孝武帝) 영강(寧康) 원년 ○ 일황 인덕 61년 ○ 서력 기원 373년】

봄에 백제(百濟) 독산성(禿山城)【수원(水原) 남쪽에 있다.】의 성주가 백성 3백여 명과 함께 신라(新羅)에 가서 항복하였으므로 왕이 6부에 나누어 살도록 하였다. 백제 왕이 서신을 보내 꾸짖기를, “우리 양국이 서로 화친하여 형제의 관계를 맺어 왔는데, 지금 왕이 우리의 반란민을 받아들이니 이는 화친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청컨대 그들을 돌려보내도록 하라.”고 하였다. 왕이 답신하기를, “백성은 항심이 없어서 왕이 사랑으로 품으면 오고 잔학하면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왕이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다만 과인을 꾸짖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고 하니 백제 왕이 다시는 감히 언급하지 못하였다.

○ 고구려(高句麗)가 비로소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행하였다.

○ 백제가 고흥(高興)을 박사(博士)로 임명하니, 백제가 개국 이래로 문자가 없다가 이때에 와서 비로소 『서기(書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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