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1권)
  • 동국역사 권1(삼국기(三國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기해(己亥) [579년]

기해(己亥) [579년]

【신라 진지왕 3년 ○ 고구려 평원왕 20년 ○ 백제 위덕왕 25년 ○ 양 선제 대건 11년 ○ 일황 민달 8년 ○ 서력 기원 579년】

가을 7월에 신라(新羅) 왕이 돌아가시고 진흥왕(眞興王)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 백정(伯淨)이 즉위하니 그가 진평왕(眞平王)이다.

○ 신라가 이찬(伊飡) 김후직(金后稷)을 병부령(兵部令)으로 삼았다. 신라 왕이 사냥을 좋아해서 김후직이 간곡히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김후직이 죽을 때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신하가 되어서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두렵도다! 왕이 놀이를 좋아하는 잘못을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니 이것이 나의 근심이다. 내가 비록 죽어서라도 왕이 깨치도록 할 것이니, 내가 죽은 후에 나를 왕이 사냥하러 가는 길가에 묻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의 아들이 이를 따랐다. 어느 날 왕이 사냥하러 가는 도중에 소리가 들렸는데 “왕은 가지 마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놀라서 물으니 좌우가 말하기를, “저 소리는 김후직의 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라고 하고는 결국 김후직의 유언을 아뢰었다. 이에 왕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기를, “자네가 생전에 충성으로 간언하더니 지금 죽어서도 잊지 않고 나를 아끼는 마음이 깊도다.” 하고는 이후부터는 죽을 때까지 사냥을 나가지 않았다.

○ 신라가 연호를 고쳐서 건복(建福)이라 하였다. 조부령(調府令)을 두어서 공부(貢賦)를 관장하도록 하고, 승부령(乘府令)을 두어서 마차를 관장하게 하였다(584).

○ 고구려(高句麗)가 장안성(長安城)【평양(平壤)의 남쪽에 있는 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 신라가 홍수로 인해 민가 3만 3백 6십 호가 물에 잠겼으므로 사자를 보내서 진휼하였다(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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