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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丙子) [문무왕 15년]

병자(丙子) [문무왕 15년]

【당 고종 의봉(儀鳳) 원년 ○ 일황 천무 4년 ○ 서력 기원 676년】이었다.

겨울 11월에 사찬(沙飡)【관등명】 시득(施得)이 당(唐)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를 소부리주(所夫里州)【지금의 부여(扶餘)】에서 싸워 이겼다. 이에 앞서 왕이 고구려(高句麗)의 남은 무리를 받아들이고 또한 백제(百濟)의 옛 땅을 점거하였다. 이에 당나라 황제가 대로하여 왕의 아우 김인문(金仁問)을 계림 대도독(鷄林大都督)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유인궤(劉仁軌)를 계림도 대총관(鷄林道大摠管)에 임명하여 신라(新羅)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때에 김인문이 당나라에 있었는데, 당나라 황제가 김인문에게 명령하여 귀국하도록 하고, 유인궤가 먼저 칠중성(七重城)【지금의 적성(積城)】에 나아가 빼앗았다. 왕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니, 당나라가 곧 병사를 거두고 김인문을 소환하여 임해군공(臨海郡公)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왕은 더욱 백제의 옛 땅을 취하고 고구려 남쪽 경계에까지 주군(州郡)을 설치하니 당나라가 거란[契丹], 말갈(靺鞨)과 연합하여 여러 차례 침범하였으나 왕이 모두 승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시득이 또다시 설인귀와 함께 20여 차례 싸워서 모두 승리하여 4천여 급의 머리를 베니, 이때부터 당나라 병사가 감히 다시 오지 못하였다(675).

○ 말갈이 아달성(阿達城)을 노략질하였는데, 성주(城主) 소나(素那)가 싸우다가 죽었다. 소나는 백성(白城)【지금의 안성(安城)】 사람이다. 그의 부친 침나(沈那)가 용력이 남보다 뛰어나서 백제 사람이 비장군(飛將軍)이라 지목하였다. 소나가 또한 용맹하고 힘이 강해서 부친의 풍모가 있었다. 왕이 소나를 보내서 아달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말갈이 갑자기 성으로 들이닥쳤으므로 소나가 칼을 빼어 들고 크게 소리치며 적진을 향해 돌격하던 중 수많은 화살이 그에게 집중되어 죽었다. 친구가 그의 부인에게 조문하였는데 부인이 울며 말하기를, “돌아가신 이가 항상 말하기를 ‘대장부가 임금을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더니 지금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 승려 신혜(信惠)와 의안(義安)을 정관대서성(政官大書省)에 임명하고 또한 승려 의상(義相)에게 명하여 부석사(浮石寺)를 태백산(太白山)【지금의 영주(榮州)1)원문에는 영천(榮川)으로 되어 있으나, 영주(榮州)로 바로잡는다. 지역】에 창건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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