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중종(中宗) 사성(嗣聖) 원년 ○ 일황 천무 12년 ○ 서력 기원 684년】이었다.
보덕왕(報德王) 안승(安勝)의 친족 아들 장군 대문(大文)이 금마저(金馬渚)【지금의 익산(益山)】를 점거하여 옛 나라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에 왕이 곧 평정하고 그 지역을 금마군으로 삼았다.
○ 설총(薛聰)을 발탁하여 고질관(高秩官)으로 삼았다. 설총의 자(字)는 총지(聰智)이니, 부친 원효(元曉)가 일찍이 승려가 되었다가 얼마 후에 환속(還俗)하여 요석궁(瑤石宮) 과부인(寡夫人)과 혼인하여 설총을 낳았다. 설총이 총명하고 박학하여 능히 방언(方言)으로써 구경(九經)의 의미를 해석하여 생도들을 훈도하며, 또한 속언[俚語]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서 관부의 문서에 사용하였다.
○ 가을 7월에 왕이 돌아가시고, 태자 이홍(理洪)이 즉위하였다(692).